2023년도는 내가 살아온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적응하기에 바빴고 하루하루를 허투르게 보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한 해였다. 하루하루가 모자라다고 느껴질 만큼 매시간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 집중했고 그러다 보니 일 년이란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벌써 23년도의 끝을 보고 달리고 있다.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글을 남겨본다.

한국귀국

올해 내게 제일 큰 변화는 다름 아닌 한국 귀국이었다. 다른 해보다 올해에 큰 의미를 둔 이유 중 제일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남들이 생각하는 한국 귀국은 별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나에겐 단순한 한국 귀국이 아닌 장장 14년이라는 유학 생활을 마무리한 후의 한국 정착이었기에 조금 더 의미를 둔 듯하다. 인생의 반을 타지에서 보내고 살아온 나에겐 큰 다짐이자 그에 따른 변화들이 많고 클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계획을 하면서 올해 초부터 계획들을 차차 진행했다. 14년이란 긴 시간을 몇 달 안에 다 정리하고 마무리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출입국 서류, 이사, 차 처분, 한국 입사준비 등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고 어느새 한국 입국을 해야 할 때가 다가왔었다. 워낙 어린 나이부터 새로운 분야나 환경에 정착하거나 적응해 본 경험이 많았던 나였기에 이 변화는 나에게 두려움보단 설렘과 좋은 긴장감을 줬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은 벌써 한국에 온 지도 4개월이 지나고 5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잘 적응했고 지금 생활에 만족하면서 하나하나 못해본 걸 해보며 살아가고 있다. 나에겐 조금은 더웠던 8월 말에 입국해서 새로운 집과 동네에 적응하며 9월을 보냈고 가을을 맞이하며 10월과 11월이 빠르게 흘러갔다. 중간중간에 있었던 약속들, 가족여행과 추석 또는 크리스마스 같은 조금은 특별한 날들이 날 충분히 바쁘게 해 줬었다.

많은 게 바뀌었지만 모든 게 좋은 바뀜이었다. 항상 방학을 맞이해 한 달 또는 조금은 더 길게 한국에 방문했었을 때에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던 일은 출국까지 며칠 남았는지 계산하는 것이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안 남았다는 이유로 무언가에 쫓기듯이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걸 몰아서 했다면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가 생겼다. 또 항상 가족들을 원할 때마다 만날 수 있다는 게 크게 장점이자 달라진 점이다. 예전엔 시간, 거리와 이동 비용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기에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던 가족들을 언제든지 원하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 많은 인프라가 집 근처에 있고 다양한 활동들과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은 한국에서 사니 삶의 질이 올라간 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아직까지도 적응할 게 많고 모르는 게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 해결해주지 않을까.

버킷리스트였던 한달 여행과 그 외의 여행

미국 생활 한지 8년이나 되었지만 항상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바쁘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 여행을 미루어 왔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지내던 알래스카가 아닌 다른 주들을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쌓여갔었고 그것이 곧 내 버킷리스트로 자리 잡았다. 한국 정착이 결정되고 나서 지금 아니면 평생 못해볼 거 같다는 생각에 미국 한 달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게 되었다.

가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다른 주 여행을 한 번도 못 해본 나로선 미국의 대표적인 도시들을 가는 게 제일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로 Chicago, LA, San Francisco로 결정되었다. 장소들이 결정되니 따른 것들은 빠르게 결정되었다. 항상 J의 성향을 가지고 디테일하게 여행 계획들을 해왔지만 이번엔 워낙 길기도 하고 재택근무로 일을 하면서 한 달 여행을 하는 것이었기에 내가 지낼 장소, 교통, 비행기 티켓, 대략적인 스케줄, 가보고 싶은곳외에는 딱히 계획하지 않았다.

남들이 봤을 땐 여자 혼자 여러 주를 한 달 동안 여행하는 게 위험하게 보이고 어떻게 하지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는 거 같다.

Chicago

여행 첫 도시였던 Chicago는 나에겐 정말 신기한 곳이었다. Chicago는 오묘하게 시골과 도시가 둘 다 잘 어울려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멋진 건축물들이 도시 전체에 펼쳐져있고 그 사이에 커다란 숲이라고 할 수 있는 공원들과 대표 관광지인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낮에도 너무 이쁜 곳이지만 밤이 되면 모든 건물들의 빛이 강물에 반사되어서 더욱더 아름답게 빛났던 곳이다. 그 다리에서 뷰를 보며 한참을 멍 때렸던 거 같다. 일부러 야경을 보기 위해서 높은 타워에서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다. Chicago는 뷰와 야경을 너무 좋아하는 나에게 완벽한 곳이었다.

Los Angeles

여행 두 번째 도시는 Los Angeles로 정했었다. 작년 한번 갔다 왔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회사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 간 것도 있다. 일한 지 벌써 2년이 되었지만 재택근무라는 이유만으로 화상통화로만 봐왔던 회사사람들이었기에 더욱더 기대되고 이번 여행이 더 설렜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를 화상통화로만 보고 알고 지낸다는 것과 직접 만나보고 얘기를 한다는 건 정말 다른 경험이었다. 카메라에서 비치는 모습, 일하는 모습 또는 미팅하는 모습 그 외에 사람다운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가 뿌듯하면서도 그 팀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게 행복했다. 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많은 게 바뀌었지만 제일 컸던 건 회사의 크기, 성장과 무엇보다 엔지니어팀 자체의 멤버수와 체계적인 구조가 달라졌다. 여기서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많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팀원들 사이에서 잘 성장하고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여행이었다.

San Francisco

한 달 여행의 마지막 도시이었던 San Francisco는 자연과 어우러진 아주 예쁜 도시였다. 언덕길도 많고 어딜 가나 넓은 뷰와 탁 트인 장소들이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바다 근처에 있는 도시였기에 조금만 운전해서 가도 바다표범과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볼 수가 있었는데 그게 참 좋았던 거 같다. San Francisco는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낮게 지어져 있었고 주변에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어서 그런가 어딜 가도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들판이나 공원에 앉아서 본인들의 시간을 즐기고 웃고 떠드는 모습들과 버스킹 하는 모습들 등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많이 보인 마지막 도시였다.

Fairbanks

사실 페어뱅크스는 올해 초에 갔다 온 곳이다. 알래스카를 떠나기 전에 오로라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떠난 곳이기도 하고 이 맘 때쯤 많은 업무랑 번아웃에 의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힘들어했던 때이기도 했다. 솔직히 가서도 일을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저녁까지 일을 마치고 잠깐 나가서 밤에 운전하고 여기저기 들리면서 오로라를 기대하기도 했고 그중 하루는 유명한 광광코스인 야외온천을 들리기도 했다. 비록 오로라는 못 봤지만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한 거에 의미를 두고 만족했던 짧은 즉흥 여행이었다.

회사 업무

이 회사에도 들어와서 일하기 시작한 지 벌써 2년 차 아니 3년 차를 보고 달려가고 있는 개발자이다. 2년 반이 지나가는 지금 이 시점, 프런트 앤드 개발자는 매일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업무들을 하는 느낌이다. 우선 개발을 해야 하는 feature이나 page들이 달라지거나 그마다 또 다른 디자인들이 주어지기에 조금씩은 다른 느낌이지만 크게 보면 프런트앤드개발자가 하는 건 비슷비슷하다. 개발하거나 수정해야 하는 업무와 함께 디자인이 주어지고 그에 맞게 코딩을 짜고 코딩 테스트를 거쳐 테스트를 해서 배포를 하는 것.

하지만 올해는 지금까지 해온 그 어떤 업무보다 규모가 크고 복잡하고 어려운 업무들이 많이 주어진 한 해였다. 올해 초부터 중순까지 6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백엔드 3명과 프런트엔드 4명으로 구성된 엔지니어팀이 총 동원해 플랫폼 전체를 업그레이드 및 개발과 마이그레이션 한 경험을 쌓았다. 팀원 모두 밤낮주말 할꺼없이 달려들어 일을 진행시켰고 그 결과로 계획했던 시간 안에 모든 업무를 완성시키고 배포까지 성공했었다.

버전 1은 많은 문제가 있었다. 우선 코드 자체가 전에 같이 일을 했었던 CTO의 코드로 깔려있어서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고전적인 코드 스타일을 고집해서 발전 가능성이 없었고 무엇보다 엄청 복잡해서 새로 입사하는 개발자들이 적응하기 힘들어했었다. 버전 2는 사용자 경험을 향상하기 위해 시스템 플로우 자체를 보강시킨 뿐만 아니라 전체 디자인도 업데이트시켰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플랫폼의 품질이 향상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배운 점도 너무 많다. 본격적인 개발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과 도구들을 학습하고 적용하면서 아토믹 디자인 패턴을 활용한 컴포넌트 단위 개발과 페이지 단위 마이그레이션 개발 등 다양한 기술적 역량을 향상했고, 프로젝트 기획 과정 및 개발 초기단계에서 플랫폼 V2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프레임워크나 라이브러리, 전체 프로젝트의 타임라인 및 업무를 나누는 과정에서 각 팀원마다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그 의견들을 취합하고 조율하며 협업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냥 하루하루 일하는 게 당연하고 흘러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배우는 게 많은 거 같다. 코드가 달라지는 걸 스스로 느끼고 예전엔 하기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렸던 업무도 이젠 무덤덤하게 받는 걸 보면 많은 게 달라졌다는 건 확실하다.

자기계발

올해는 정말 많은 시간을 자기 계발에 쏟아부었다. 처음엔 한국에 가서 이직한다는 생각으로 하루의 반을 일을 하고 자기 전까지 또 다른 하루의 반을 자기 계발을 했다. 자기 계발은 세 가지로 나눴었는데 첫 번째는 프로젝트 2-3개를 만들기였다. 내가 알던 또는 알지만 써보지 못했던 툴을 사용하고 조합해서 여러 가지 웹사이트를 만듦으로써 많은 툴에 경험을 좀 더 높이고 할 수 있는 게 많았으면 하는 게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한국 취업 과정 중에서 많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딩테스트였다. 미국이랑은 좀 다르게 한국 취업은 코딩테스트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알고 백준 코딩테스트를 천천히 하기로 마음먹고 해 나갔다. 세 번째는 개발블로그였다. 우선 영어로 코딩 자체를 배운 내가 한국어로 Tech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추후에 내가 공부했던 기록들을 돌아볼 곳들이 잇었으면 했다.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그냥 사람 사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아침 7시에 기상해서 8시부터 미팅을 하고 1시쯤에 점심을 먹고 5-6시쯤에 일이 끝나면 저녁 먹고 자기 전 새벽까지 자기 계발을 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보내면서 점점 지치기도 했고 일도 병했햇기에 번아웃도 왔다. 매일 작성하는 코드 한줄한줄이 어떨 땐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선 전보다 2-3개 더 쌓인 프로젝트 리스트와 개발 블로그에 조금이나마 채워진 내가 작성한 글들을 지금 보면 뿌듯하기도 하다. 그만큼 지식의 폭이 넓어진 것 같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위의 이직 준비를 열심히 한 만큼 이직이라는 큰 숙제가 있었지만 결론은 아직 이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너무 감사하게도 나에게 한국에서 같은 회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 연봉으로 이렇게 한국에서 여유롭게 생활할 수 없는 현실을 알기에 잠시 이직은 내려놓은 상황이다. 대신 정말 뒤바뀐 생활패턴에 익숙해가면서 일을 하고 더 나아가서 내 개인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국 올해 이직은 못했지만 난 오히려 이게 더 큰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이직 준비를 하는 과정을 큰 변화가 있기 전 준비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마치며

2023년은 나에게 큰 변화를 준 한 해였다. 모든 생활패턴, 환경과 마음가짐까지. 올해가 없었다면 좀 더 성장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나에겐 필요했던 한 해이자 언젠간 한 번은 겪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있었다. 그 큰 변화들에 잘 적응해 가면서 잘 해내보고 싶다. 많은 게 새롭고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많지만 지금까지 타지에서도 잘해온 걸 토대로 하면 오히려 과거의 나보다 더 잘 버티고 견디고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설레는 한 해였다.